Le Dilettantisme/livres

[Livre] <젊은 베르터의 고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번역 비교 (창비/두레)

겨울달C 2016. 2. 24. 04:32

판본은 워낙 다양하나 비교해 본 바로는 <파우스트>를 번역한 이인웅 교수가 번역 두레 판본과, 제목까지 새로 바꿔 내놓은 창비문학전집의 첫 권인 임홍배 교수 번역이 괜찮았다. 표절 사건으로 창비는 불매 중이라면 두레판을 추천한다. 창비판은 만연체의 문장을 가독성이 좋게 정렬해 놓았고 두레판은 문장이 길어도 잘 읽힌다. 민음사는 1999년 출판이지만 가장 많이 읽힌 백전노장이다. 민음사와 창비는 공통적으로 책 전체를 편지글로 번역하지 않고 중간중간 어투를 독백으로 바꾸어 일기와 편지를 번갈아 가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두레는 일정한 하게체로 쓰여져 있다. 을유는 미리보기 분량 중간중간에 한 발자국만 더 가면 오역 아닌가 싶은 문장이 한두 개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어투가 해체여서 미묘하다. 펭귄과 더클래식도 혹시나 싶어서 들춰보기는 했으나 역시나 믿고 거르면 되겠다. 펭귄에서는 조선시대 서간 정도의 진중함이 흐르고(..) 근데 연도로만 따지면 조선시대 맞다.  더클래식은 그 악명 치고는 역자 이름도 붙어 있고 꽤 제대로 된 편이지만 이건 현대 문학도 아닌 고전이고, 괴테임을 생각한다면......


정확한 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군데를 비교해 보는 거지만 일단 미리보기가 가능한 부분 안에서 두레판과 창비판을 비교하자면 이렇다. 



#1.

Was ich von der Geschichte des armen Werther nur habe auffinden können, habe ich mit Fleiß gesammelt und lege es euch hier vor, und weiß, daß ihr mir's danken werdet. Ihr könnt seinem Geist und seinem Charakter eure Bewunderung und Liebe, seinem Schicksale eure Tränen nicht versagen.

Und du gute Seele, die du eben den Drang fühlst wie er, schöpfe Trost aus seinem Leiden, und laß das Büchlein deinen Freund sein, wenn du aus Geschick oder eigener Schuld keinen näheren finden kannst.


(창비)나는 불쌍한 베르터의 이야기에 관해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수집하여 여기 독자 여러분에게 내놓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이러한 노력에 감사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베르터의 정신과 성품에 감탄과 애정을, 그의 운명에는 눈물을 금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한 영혼을 가진 그대가 베르터와 같은 충동을 느낀다면 그의 고뇌에서 위안을 얻으십시오. 그리고 그대가 불운이나 자신의 잘못으로 절친한 벗을 찾지 못한다면 이 작은 책을 벗으로 삼기 바랍니다.


(두레)가여운 베르테르의 이야기에 관해 내가 찾아낼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열심히 모아, 여러분 앞에 내어 놓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나에게 감사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그의 정신과 성품에 대해서는 온갖 경탄과 사랑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그의 운명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영혼을 가진 분들이시여, 만일 그대가 베르테르와 똑같은 충동을 느낀다면, 그의 슬픔에서 위안을 찾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그대가 어떤 운명 때문이든 자신의 잘못 때문이든, 이보다 더 가까운 친구를 찾을 수 없다면, 이 조그만 책을 그대의 벗으로 삼아 주십시오.


→'Leiden'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차이가 나는 부분. 이인웅 번역은 굳어진대로 '슬픔'이라고 번역했고, 임홍배 번역은 제목을 바꾸는 과감함으로 '고뇌'로 번역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원어의 뜻과 책의 내용을 고려해서라고 한다.



#2.

Wie froh bin ich, daß ich weg bin! Bester Freund, was ist das Herz des Menschen! Dich zu verlassen, den ich so liebe, von dem ich unzertrennlich war, und froh zu sein! Ich weiß, du verzeihst mir's. Waren nicht meine übrigen Verbindungen recht ausgesucht vom Schicksal, um ein Herz wie das meine zu ängstigen?


(창비)이렇게 떠나오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가! 친구여, 사람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자네가 너무 좋아서 도저히 헤어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자네 곁을 떠나와서는 이렇게 기뻐하다니! 그래도 나의 이런 모습을 용서해주리라 믿네. 내가 누군가를 사귀면 언제나 운명이 심술을 부려서 내 마음을 괴롭히지 않았던가?


(두레)떠나고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 사랑하는 친구여, 사람의 마음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서로 떨어질 수 없었던 자네와 헤어지고 나서 이렇게 즐거워하다니! 자네는 이런 나를 용서해 주리라 생각하네.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는 정말 나와 같은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기 위해 운명이 마련해 둔 것이 아니었을까?


굵은 글씨로 표시한 것은 번역 차이가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민음사를 시작으로 보통은 두레판처럼 옮겨져 있으나 뜻까지 다르게 옮긴 건 창비판이 처음이다. 원문을 보면 "운명이 점지한 내 여타의 관계는 정녕 나같은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정도인데, 창비판이 틀렸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의도로 저렇게 옮겼는지 그 사이의 사고를 추론하기가 쉽지 않다(..). 



#3.

ich will das Gegenwärtige genießen, und das Vergangene soll mir vergangen sein. Gewiß, du hast recht, Bester, der Schmerzen wären minder unter den Menschen, wenn sie nicht – Gott weiß, warum sie so gemacht sind! – mit so viel Emsigkeit der Einbildungskraft sich beschäftigten, die Erinnerungen des vergangenen Übels zurückzurufen, eher als eine gleichgültige Gegenwart zu ertragen.


(창비)이제 나는 현재만을 즐기려고 하네. 이미 지나간 일은 과거지사로 접어야지. 사람들은 너무나 극성맞게 상상에 몰입하여 지나간 불행의 기억에 휘둘리는데, 인간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누가 알겠나. 확실히 자네 말이 맞아. 그럴 게 아니라 평정심을 갖고 현재를 감당해간다면 사람들 사이에 고통이 훨씬 줄어들겠지.


(두레)난 현재를 즐기려 하네. 그리고 과거는 지나간 것으로 덮어 두겠네. 친구여, 확실히 자네 말이 옳아. 만일 우리 인간이 열성적으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과거의 괴로운 추억들을 더듬는 일에 몰두하지만 않는다면, ― 왜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어! ― 그리고 그 냉정한 현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은 고통에 훨씬 덜 시달릴 것이네.


→창비판은 문장을 짧게 끊고 순서를 변경했다. 두레판은 원문의 형식과 배열 그대로 옮겼다.



#4.

Die Stadt selbst ist unangenehm, dagegen rings umher eine unaussprechliche Schönheit der Natur. Das bewog den verstorbenen Grafen von M., einen Garten auf einem der Hügel anzulegen, die mit der schönsten Mannigfaltigkeit sich kreuzen und die lieblichsten Täler bilden. Der Garten ist einfach, und man fühlt gleich bei dem Eintritte, daß nicht ein wissenschaftlicher Gärtner, sondern ein fühlendes Herz den Plan gezeichnet, das seiner selbst hier genießen wollte. Schon manche Träne hab' ich dem Abgeschiedenen in dem verfallenen Kabinettchen geweint, das sein Lieblingsplätzchen war und auch meines ist. Bald werde ich Herr vom Garten sein; der Gärtner ist mir zugetan, nur seit den paar Tagen, und er wird sich nicht übel dabei befinden.


(창비)이 도시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주위에는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어. 작고한 M 백작은 이런 풍광에 마음이 끌려서 언덕 위에 정원을 가꾸었지. 언덕들은 너무나 아름답게 다양한 모습으로 포개져서 정겹기 이를 데 없는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네. 백작의 정원은 소박해. 정원에 들어서면 이 정원을 설계한 사람이 전문적인 조경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줄 아는 사람임을 금방 알아볼 수 있어. 여기서 스스로 즐기기 위해 만든 것이지. 다 쓰러져가는 조그만 정자에서 나는 고인을 생각하며 몇번이나 눈물을 흘렸다네. 고인은 이 정자를 즐겨 찾았고, 나 역시 그렇지. 이제 곧 내가 이 정원의 주인이 되겠지. 불과 며칠 사이에 정원사는 내게 호의를 보이고 있고, 내가 주인 노릇을 한다고 해서 고깝게 여기지는 않을 테니까.


(두레)도시 자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주위의 자연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네. 이미 세상을 떠난 M 백작이 아름다운 자연에 감동되어 이 언덕에 자기 정원을 만들었는데, 이 근처의 언덕들은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광경을 교차시키며 아주 멋있는 골짜기를 이루고 있네. 그 정원은 소박하게 만들어졌는데, 그 안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정원이 어떤 전문적인 정원사에 의해서 꾸며진 것이 아니라,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여기에서 스스로 즐기기 위해 설계한 것이라는 점을 금방 느낄 수 있지. 나는 이 허물어진 정자에 와서 이미 세상을 떠난 백작을 생각하며 벌써 여러 번 눈물을 흘리곤 했다네. 정자는 고인이 가장 좋아하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내게도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되었지. 머지않아 내가 이 정원의 주인이 될 거야. 며칠 되진 않았지만 정원사도 나를 좋아하고 있는데, 그러는 것이 그에게도 나쁘진 않을 거야.


→워낙에 독특한 번역이라 아마존에서 몇 가지 영어 번역도 찾아보았다. 이 부분은 대부분 '그렇게 해도 그가 손해 볼 것은 없다/잃을 것은 없다' 정도의 뜻으로 번역되어 있다. 독알못 수준으로 시비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독일어 사전을 보면 아마도 형용사 'übel'을 어떻게 보았느냐에서 오는 차이 같다. '불쾌한'으로 보면 창비판 번역이 되고, '곤란한'으로 보면 영어판 및 기타 한국어 판본 번역이 된다. 문맥상으로는 며칠 사이에 정원사가 호의를 보이고(mir zugetan) 있으니까 베르터가 그렇게 한다(dabei definden)고 해서 기분 나빠(übel)하지 않을 거라고 창비판처럼 번역하는 게 좀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긴 한다.



#5.

dann sehne ich mich oft und denke : ach könntest du das wieder ausdrücken, könntest du dem Papiere das einhauchen, was so voll, so warm in dir lebt, daß es würde der Spiegel deiner Seele, wie deine Seele ist der Spiegel des unendlichen Gottes! – mein Freund – aber ich gehe darüber zugrunde, ich erliege unter der Gewalt der Herrlichkeit dieser Erscheinungen.


(창비)그럴 때면 나는 곧잘 그리움에 잠겨 이런 생각을 한다. 아, 내 마음 속에 이렇게 충만하고 뜨겁게 살아 있는 것을 재현할 수는 없을까! 내 마음을 종이 화폭에 입김처럼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화폭이 내 영혼의 거울이 되고, 내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이 될 수만 있다면! 친구여, 하지만 이처럼 벅찬 생각에 쓰러질 것만 같고, 이런 장관의 장엄한 힘에 압도당하고 만다네.


(두레)나는 종종 그리움에 사로잡혀 이렇게 생각한다네. "아아, 너의 영혼이 영원한 하느님의 거울인 것처럼, 그 그림이 네 영혼의 거울이 되게 할 수만 있다면. 네 마음속에 그다지도 충만하고 따스하게 살아 있는 것을 다시 표현할 수 있고, 입김처럼 종이에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하고 말이야. ― 친구여, 그러나 나는 그로 인해 파멸할 지경이며, 이러한 현상들의 장엄한 위력 앞에 굴복해 버리고 만다네.


→역시 번역 스타일의 차이가 잘 나타나는 부분.



#6.

Auch denen ist's wohl, die ihren Lumpenbeschäftigungen oder wohl gar ihren Leidenschaften prächtige Titel geben und sie dem Menschengeschlechte als Riesenoperationen zu dessen Heil und Wohlfahrt anschreiben. – Wohl dem, der so sein kann! Wer aber in seiner Demut erkennt, wo das alles hinausläuft, wer da sieht, wie artig jeder Bürger, dem es wohl ist, sein Gärtchen zum Paradiese zuzustutzen weiß, und wie unverdrossen auch der Unglückliche unter der Bürde seinen Weg fortkeucht, und alle gleich interessiert sind, das Licht dieser Sonne noch eine Minute länger zu sehn – ja, der ist still und bildet auch seine Welt aus sich selbst und ist auch glücklich, weil er ein Mensch ist. Und dann, so eingeschränkt er ist, hält er doch immer im Herzen das süße Gefühl der Freiheit, und daß er diesen Kerker verlassen kann, wann er will.


(창비)그런가 하면 자신이 수행하는 허접한 업무나 정열을 바치는 일에 거창한 명분을 달아서 그것이 곧 인류의 구제와 복지를 위한 막중한 사업이라고 눙치는 자들도 나름대로 잘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니! 하지만 그 모든 일이 과연 어떻게 끝날지 겸손하게 깨닫고 있는 사람, 자신의 소박한 정원을 낙원처럼 가꾸는 일에 만족하는 평범한 시민이면 누구나 행복하다는 걸 아는 사람, 그런가 하면 불행한 사람도 무거운 짐을 지고 아무런 불평 없이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개척해간다는 걸 아는 사람, 그리고 누구나 똑같이 이 햇빛을 단 몇분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 ― 그런 사람은 조용히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사람도 행복하다. 그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므로. 그런 사람은 아무리 제한된 환경에 처하더라도 스스로 원할 때는 언제라도 이 감옥 같은 세상을 떠나버릴 수 있다는 달콤한 자유의 감정을 항상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이다.


(두레)또한 아무 가치도 없는 자기의 일이나 심지어는 자신의 정열에까지 화려한 이름을 붙여 놓고, 그것으로 인류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크나큰 역할을 했다고 내세우는 사람들 역시 행복하다고 하겠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행복이라고 하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디로 흘러가 끝나는지를 겸손하게 알아차리는 사람, 또 소시민 한 사람 한 사람도 자기의 조그만 정원을 낙원처럼 손질하며 행복해 하고, 비록 불행한 사람이라도 무거운 짐을 진 채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행복해 하고, 이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저 밝은 햇빛을 단 일 분이라도 더 바라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 그래, 그런 사람은 침묵을 지키면서 자기 내면으로부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데, 그도 한 인간이기 때문에 역시 행복을 느낀다네. 그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은 아무리 속박을 받는다 해도 마음속에 언제나 달콤한 자유감정을 간직하고 있으며, 자기가 원할 때엔 언제라도 이 감옥을 떠날 수 있다네.


원문 문장 길이 보소(..). 어떤 부분은 일기처럼 독백체로 번역한 창비판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부분.



이 정도면 충분한 비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번역문을 타이핑 할 때는 두레판도 사서 읽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막상 비교를 해보니 그냥 창비판으로도 괜찮겠다 싶기도. 하지만 예정대로 두레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구매해서 읽어 보는 걸로. 왜냐하면 베르터가 오시안의 노래를 낭독하는 뒷부분이 도대체 뭐하는 염병들(..)인지 세 번을 읽어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기 때문에... <파우스트>를 옮긴 이인웅 번역으로도 이 부분을 한번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왠지 창비 빠(..)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2014년도에 두도시를 살 때 함께 구매한(..) 책이었는데 읽은 것이 지금일 뿐... 두도시와 베르터만 보고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두 권 다 번역에 신경을 쓴 흔적은 역력하다. 시일은 좀 걸리겠지만 일단 창비세계문학에서 나온 다른 책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일단 책 표지 디자인이 예쁘잖아.


글을 마무리하려고 보니 문득 내가 이래서 문학 비중이 적을 수밖에 없는 독서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한 권 읽는 데 들이는 정성이 그야말로 대애단하다... 병이다,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