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Dilettantisme/livres

[Livre] <두 도시 이야기> 완역본 출판사별 번역 비교 총평 (펭귄/더클래식/창비)

겨울달C 2014. 8. 26. 01:12

창비 알바 아님(..)을 위한 인증샷.


책 + 아이패드 + 킨들 + 폰까지 동원해서 사흘간 정독. 네 가지 판본을 구매하는 데 거의 3만원 가까이 들었다. 그나마 더클래식과 킨들 원문이 매우 저렴했기에 망정이지...ㅠㅠ 


결론부터 한 줄 요약: 무조건 창비.



<비교 저본>

두 도시 이야기(eBook), 찰스 디킨스 저/이은정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2012.

두 도시 이야기(eBook), 찰스 디킨스 저/바른번역, 더클래식, 2012.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저/성은애 역, 창비, 2014. 

A Tale of Two Cities(Kindle), Charles Dickens/Hablot Knight Browne, e-artnow Editions, 2013. 


국내에서 가장 먼저 '완역본' 타이틀을 달고 나온 건 2012년 7월에 펭귄에서 이은정 씨 번역으로 발간한 책. 그리고 4개월 뒤인 2012년 11월에 더클래식에서 공동번역으로 발간. 2년 뒤인 올해 창비에서 성은애 씨 번역으로 또 완역본 발간. 이 세 판본을 제외한 나머지는 '완역' 타이틀을 달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대상에서 제외함. 그리고 이 세 가지 번역본을, 1859년 초판본을 그대로 eBook으로 옮긴 영문 원서와 비교하면서 2부 6장까지 꼼꼼하게 비교하면서 읽어 보았다. 그 결과...


펭귄 - 쓰레기 중의 쓰레기... 하... 아무리 그렇기로서 대학에서 전공을 하고 '전문 번역가'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는 사람이니 나보다는 영어를 잘 할거니까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참았는데, 2부에서 오역과 누락의 쓰나미를 맞는 순간 '영어를 다시 배워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2부 6장까지밖에 비교를 못 한건 오로지 이 펭귄판 때문이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더 이상은 못 읽겠어서 손을 놔버림.

이 번역가는 주어 서술어 목적어 보어 구분할 줄 모르는가? 아니 정말로,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주어를 목적어로 목적어를 주어로 바꿔 해석해서 문장의 의미 자체가 뒤바뀌질 않나 부사를 주어로 가져다놓질 않나. 단순히 의미상의 주어나 가독성을 위해 문장을 고친 정도가 아니라, 관계대명사나 접속사까지 잘못 번역해서 문장을 아예 다른 의미로 바꿔버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심지어 번역에 누락도 많다. 본인이 보고 마음에 안 들거나, 해석하기 까다로운 구나 절은 모조리 생략하고 번역한 느낌. '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길래 이 문장을 이렇게 번역하셨어요?'하고 머릿속에 물음표 백만 개. 거기다 디킨스가 만연체의 장문을 잘 쓰는 달문가인데, 그 문장들을 여기 끊고 저기 끊고 난도질을 해놨다.

이런 수준의 번역본을 '완역'이랍시고 만 원이 넘는ㅋㅋㅋㅋㅋ돈을 받고ㅗ 팔고 있다는 사실에 복장이 뒤집어진다. 펭귄클래식코리아는 제정신인가? 내가 알고있는 펭귄은 이런 출판사가 아닌데? 심지어 이게 14쇄라고 하니...ㅋㅋㅋㅋㅋ 할말않.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국내 최초로 '완역본'을 낸 역자의 노고에는 박수를 보낸다. 결과물이 영 좋지 않은 곳을 스쳐서 그렇지만...


더클래식 - 더클래식도 펭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공동번역이라 미묘하게 번역 수준과 문체가 챕터마다 다르다. 하지만 펭귄과 더클래식 둘 중에 비교하라면 나는 차라리 더클래식 편을 들어주겠다. 더클래식도 오역이 만만치 않지만 한 페이지의 반이 오역인 펭귄에 비하면 훨씬 적은 편. 그리고 펭귄에서 문단 채로 누락시킨 부분은 나름대로 채워 놨다.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 꼭 보고 베낀 것 처럼 '중대한' 오역은 펭귄판의 윤문 수준으로 그대로 답습했다. 오역한 부분이 의미까지 일치되는 거 보면, 기막히게 꼭 닮았다는 시드니와 다네이의 얼굴을 보는 기분이 이럴까 싶을 정도ㅋㅋㅋㅋㅋ. 

그리고 더클래식은 문장을 읽어보면 그 표현이 참으로 저렴하다. '붕어빵', '대박', '똥칠', '따따불', '지랄' 등의 표현을 읽을 때마다 내 정신이 병드는 걸 느꼈다. 이건 좋게 말하면 매우 파격적이고 쉬운 번역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문체 파괴다. 그래서 난 원문을 안 읽어보고 그냥 펭귄이랑 더클래식만 비교해서 읽어봤을 때는 펭귄이 더 낫다고 생각했었다. 펭귄의 번역문은 진짜 겉은 그럴싸하므로. 하지만 그게 전부다. 차라리 문장이 저렴한 게 오역 천지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더클래식은 가격이라도 싸지. 그리고 문체 파괴를 통해 모든 문장을 재배열(..)했기 때문에 매우 쉽게 읽힌다. 아직 문해력이 완성이 안 된 청소년이거나, 딱딱한 고전이 어렵다거나, 만연체에 면역력이 없는 사람은 더클래식으로 읽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 오역이 많다 해도 펭귄처럼 누락시키진 않았고 완전히 엉뚱하게 번역한 건 '비교적 적은' 편이었으니.

하지만 나는 더클래식의 공동번역 시스템은 이전에도 싫었고, 지금도 싫고, 앞으로도 싫어할 것이다. 만약 펭귄이 첫 완역이 아니고 더클래식이 첫 완역이었다면 책 내용이 무슨 꼴이 났을지 안 봐도 보이거든.


창비다시 한번 말하지만 창비 알바하는 거 아님. 나는 평범한 잉여일 뿐. 창비에서 두도시가 새로 나왔을 때, 어떤 사람이 성은애 씨가 유명한 번역가라고 하는 걸 봤었다. 나는 솔직히 성은애 씨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책 찬찬히 읽어보니 정말 그럴만 하더라. 정말 단어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라서 문장을 정확하게 번역했다. 위에서 디킨스가 만연체를 잘 쓰는 달문가라고 했는데, 정말 원문 읽어보면 반 페이지가 쉼표, 쉼표, 쉼표로 한 문장으로 이어져 있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그 문체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한국어로 어색하지 않게 번역을 잘 했다. 펭귄이나 더클래식 읽다가 창비 읽으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ㅋㅋㅋ. 하지만 너무 정확하게 번역하는 바람에 이 부분은 단어를 좀더 고급스럽게 쓰거나 약간 의역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 문장도 있었다. 그런 면이 나랑은 살짝 안 맞긴 했지만 진짜 '완역본'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만한 건 창비밖에 없는 것 같다. 문장 사이사이 관계까지 정확하게 살려서 최대한 주어는 주어로, 동사는 동사로, 형용사는 형용사로, 부사는 부사로... 이렇게 원문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색하지 않게 번역하는 것도 번역가의 능력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술술 읽히진 않는다. 그래도 난 무조건 창비를 선택하겠다. 이 번역의 정확성에 비하면 몇몇 문장이 나랑 안 맞는 정도의 문제는 정말 티끌만큼 사소한 문제니까.

아, 그런데 뮤지컬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어색할 것 같은 부분이 하나. 창비에서는 고유명사 맨 앞의 S는 된소리로 표기한다. 그러니까 시드니가 아니고 씨드니. 혹시나 이게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구매에 참고하길.



직접 눈으로 비교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2부 6장까지 세 출판사의 번역문 비교 포스트를 몇 개 올릴 예정이므로, 직접 비교는 아래쪽 링크를 참고하길 바람.



+) 다른 곳에도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덧글로 얻은 토막지식으로 번역가들을 위한 변(變)을 해보자면, 번역이 똥으로 나오는 데는 편집자의 잘못도 크다고 함. 오역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번역가의 오역을 지적하고 비문을 바로잡는 건 편집자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아주 유명한 번역가가 아닌 이상은 출판사나 편집자가 요구하는 스타일이 있으면 그에 맞게 번역 스타일을 잡아야 한다고 함. 창비의 번역이 대부분 믿을 만한 건 편집자의 실력 덕분인 것도 있다고 함. 그래서 고전은 창비나 문학동네, 민음사 같은 이름 있는 출판사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