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Dilettantisme/musical

ⓜ체스로 끼워맞추는 <그판사> 꿈보다 해몽

겨울달C 2020. 2. 23. 18:51

사진 출처: 공연영상디자인 스튜디오 익스터널 <그림자를 판 사나이> 포트폴리오


갤에 썼던 내용 조금 추가해서 복붙.


아랜디가 체스를 좋아하니까 그판사를 체스에 끼워맞춰서 여러가지를 해석해 봤어. 원작은 막공 끝나고 읽어 보려고 안(못) 읽는 중이야... 꿈보다 해몽이라 매우(..) 억지스러운 면도 있는데 그런 건 조금 흐린 눈 해줘. 전캐 찍었지만 거의 찬그레이맨으로 봐서 디테일한 부분은 찬그레이맨 노선이야. 그냥 나는 보다 보니 이렇게 보였다는 개인적인 해석일 뿐이고 다른 의견은 언제나 환영이야!


■슐레밀(Schlemihl)

사전 찾아보니까 독일어 schlemihl은 그 단어 자체로 '운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있어서 흥미로웠음. 우리나라로 치면 김첨지 정도쯤 될래나... 호프만이라는 성도 쪼개보면 대충 저택의 주인?그런 의미인 것 같은데 나바발은 독알못이므로 사전에 대놓고 나오는 슐레밀까지만 알아봄.


■그레이맨 = 악마 또는 악마라고 불리는 신

그레이맨은 인간들의 영혼을 먹고 사는 악마야. 악마는 자기 덫에 걸려든 인간들을 마음껏 조종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혼을 직접 빼앗아갈 수는 없어. 영혼을 얻으려면 온갖 술수로 인간을 현혹해서 영혼을 팔아치우도록 '선택'하게 하는 방법 뿐이야. 그래서 그레이맨은 항상 자신을 "인간들의 영원한 하인"이라고 말하면서 비아냥거려. 신과 같은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하찮은 인간의 영혼은 마음대로 가질 수 없으니까.

결국 악마는 전능한 존재처럼 보여도 인간의 영혼, 인간의 자유의지 앞에서는 들러리나 설 수밖에 없는 존재야. 그리고 그레이맨은 이 사실이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그레이맨은 현혹하기 쉬운 절박한 인간들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그리고 걸려 든 인간을 자기 손바닥 안에서 가지고 놀면서 스스로를 '하인'이라고 부르는 '악마' 때문에 파멸하는 인간들을 조롱하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해.


■미로 = 그레이맨의 체스판

미로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을 유혹하는 그레이맨의 덫이야.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자체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절박할수록 더 쉽게 미로에 빠져들게 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무언가를 얻고 싶고, 갖고 싶다고 생각하면 이미 페터처럼 미로의 입구에 서게 되지.


■그림자 = '인간으로서 환대받기 위한 조건'

이건 플북에 있는 정영 작가 말이야. 거기서 생각해봤는데 그림자가 환대의 조건이라면 그림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사회 속에 녹아들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어. 사회인으로 살 수 있다는 건 돈, 권력, 지식, 어떠한 재능/능력, 외모, 인성 등 뭐든지 거기서 추방당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크고 작은 조건을 적어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게 그레이맨의 세계에서는 '그림자'로 표현이 돼. 그래서 캐릭터별로 그림자가 뭘까 생각을 해 봤음.


□페터의 그림자 - 양심

근거는 그레이맨이 페터의 그림자를 탐내면서 '저들의 허풍에 미소지으며 / 경멸에 가득찬 빨간 그 입술' 이라는 가사랑  페터가 호텔방에서 부르는 넘버 중에서 '양심을 지키려다 재산을 잃었다 / 황금을 얻으려다 그림자를 잃었다' 부분 가사. 

미로에 들어설 때의 페터는 쉽게 말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정도의 상태였고 실제로도 호들갑을 떠는 토마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보면서 "진짜 그지새끼들이 따로 없네."하고 일침을 날릴 수도 있는 건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었음. 그레이맨이 페터의 그림자를 탐내는 건 그냥 약팔기(?)였을 수도 있지만 페터의 '양심'이라는 흔치 않은 그림자가 다른 것보다 훨씬 흥미로웠을 거라고 생각해. 1막 페터가 공원으로 가서 기도하는 사람들한테 말을 걸 때 보면, 그림자가 있는 사람들이 그레이맨 쪽으로 무릎 꿇고 열심히 기도하지만 그레이맨은 관심 없다는 듯이 등을 돌리고 서 있어. 그레이맨 나름 미식가(?)인 것 같다고 생각한 장면.


□파스칼의 그림자 - 권력(힘)

단편적으로 보이는 파스칼의 모습은 꽤 권위적이야. 항상 상대방보다 한 계단 위에 서고 싶어해. 남의 약점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고 들어서 반드시 우위에 서지. 1막 마지막에 페터가 한밤중에 몰래 리나를 찾아갔을 때 파스칼과 리나의 그림자를 잘 보면, 파스칼의 그림자는 파스칼이 하는 대사를 입모양까지 그대로 따라하지만 리나의 그림자는 몸짓으로만 감정을 표현해. 그래서 나는 파스칼의 그림자는 권력이나 힘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가사 그대로 파스칼 또한 권력을 향한 '미칠듯한 욕망' 때문에 그레이맨의 미로 속에 들어와 있던 거 같아.


□리나의 그림자 - 진실됨

리나는 온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페터를 눈빛 하나만으로 믿어주는ㅠㅠ 진실된 사람이야.  그리고 페터처럼 그림자가 모든 것인 이 세계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는 유일한 사람이지. 리나는 그림자를 '어둠 속에 스며들면 볼 수 없는 형체일 뿐인데' 하고 정확하게 꿰뚫어봐. 이건 물리적인 그림자도 마찬가지지만 환대의 조건이라는 은유로서의 그림자도 마찬가지야. 돈, 권력, 지식, 외모... 죽고 나면 다 소용 없지. 

그런데 리나는 뭘 간절하게 원했던 걸까. 극 안에서만 추측해 보면 안식처를 원했던 것 같아. "여긴 부모님 고향이라 마음 편히 쉴 수 있거든." 이 대사 자첫에 처음 들었을 때 뭐??? 창조주 고향이 여기라고??? 그럼 악마의 자식 아니야???하면서 리나가 흑막인 줄 알고 매우 유심히 봤는데 아니었다(..).  리나는 페터가 떠난 후 아무 생각 하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고, 이왕저왕에서 춤추면서 벤델한테 화관 씌워주는 거 보면 실제로 그렇게 다 잊고 잘 지냈던 것 같아. 다만 페터가 그레이맨의 타겟이 되고, 그레이맨이 직접 리나의 손을 끌고 오면서 모든 게 변하지.



서론이 길었고 이제(..) 체스 얘기를 해 볼게.

킹, 퀸, 비숍, 나이트, 룩, 폰 이걸 등장인물들한테 한번 끼워맞춰 봤어.


■킹 = 페터

근거는 우선 첫번째로 이왕저왕 넘버. '나는 왕~ 왕~ 와앙'(...) 여튼... 이게 돈 많으면 킹왕짱! 이런 의미도 있지만 페터가 이 게임판의 킹이라는 뜻도 있다고 봤어. 체스의 최종 목표는 킹을 체크메이트 시키는 거니까, 그레이맨이 페터를 몰아넣어서 페터의 영혼을 손에 넣으려는 상황이랑 같지.

그리고 LED 배경에 체스말이 등장하는데, 다른 말은 다 한 번씩 등장하는데 킹은 없어. 달려라 달려라 넘버 끝나고 마차가 저택의 정원에 멈췄을 때 배경을 보면 대놓고 미로와 체스판이 있고 마차 양 옆으로는 똑같은 체스말이 우뚝 서 있어. 비숍 같다고 생각은 하는데 비숍이라기엔 조금 각지고 그 홈(?)이 없긴 해. 하지만 퀸이라기엔 퀸은 오른쪽 벽에 왕관 모양 뾰족뾰족하게 해서 서 있기 때문에 소거법으로 비숍으로 추측. 나머지 폰, 나이트, 룩들은 배경 전체에 흩어져있고 쓰러져 있는데 특이한 건 색이 흑/백이 아니라 전부 똑같은 회색이야. 무대 한 가운데의 두 체스말 사이에 멈춘 마차에서 "왕~? 나보고 왕이래!" 하면서 내리는 페터는 체스의 킹 피스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


■퀸 = 리나

이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추측이긴 한데, 리나는 처음부터 퀸은 아니었던 것 같아. 리나는 처음에는 그냥 그레이맨의 체스판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을 거야. 별 볼일 없는 폰 같은 말이었지. 하지만 그레이맨의 킹이 페터가 되고, 그레이맨이 리나를 직접 움직이면서부터 리나의 가치가 달라지게 된 것 같아. 

폰은 가장 첫 턴을 제외하면 한 번에 한 칸씩밖에 움직일 수 없는 말이지만 어떻게 잘 살아남아서 체스판의 반대편 끝에 도달하면 '승급'이라는 걸 해서 킹을 제외한 어떠한 체스말로도 변신할 수 있어. 보통 가장 강력한 말인 퀸으로 승급하게 되는데 이 때 말을 아예 퀸으로 바꾸거나 말에다가 어떤 표시를 해서 승급한 폰이라는 표시를 해. 앙상블을 제외한 극중 주요 인물들이 단벌신사(..) 베이스로 걸치는 것만 좀 바꿔 입는 데 비해서 리나는 옷을 갈아입어. 단순하게 물리적인 문제로 그렇게 하는 거겠지만(..) 좋은 게 좋다고 체스에 한번 끼워맞춰 보면 승급의 표시라고도 볼 수 있는 거 같아. 

1막 리나와 페터 이중창에서 찬그레이맨 보면 리나랑 페터한테 실 달고 조종하면서 즐거워하다가 퇴장 직전에 리나쪽 실을 팍 끊어버리고 페터쪽 실은 쭈욱 잡아당기면서 뒤돌아 퇴장해. 그 디테일이 뭔가 퀸 승급 완료! 이런 느낌이라 좋아하는 부분이야.


■비숍 = 그레이맨

그레이맨이 버릇처럼 이죽거리는 "당신의 하인"이라는 말이 참 의미심장해. 1막에서 벤델이 "전 하인이 될 자격이 없나봐요~ 집에 갈래요~(가증)"할 때 페터가 제발 곁에 있어 달라고 하잖아. 그럼 벤델이 "정말 간절히 원하신다면요."라고 대답해. 그리고 페터가 등불을 켜라고 하면 "전 지금부터 당신의 '진짜' 하인이니까요." 하고 인사를 꾸벅 하는데 페터가 킹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이 장면이 꼭 임명식 같다고 느껴져. 왕이 주교(비숍)를 임명하고 주교가 왕에게 충성을 약속하는 의식. 그레이맨이 일부러 페터가 '하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게 만들도록 거짓말로 상황을 조종하는 게 흥미로워.  

그리고 정원에 서 있는 거대한 비숍 말은 다른 바발이 먼저 해석한 게 좋아서 링크로 붙일게. 

비숍은 오직 같은 색 칸만 다닐 수 있다는 점도 재밌어. 단순화해서 이분법으로 흑/백을 나누고 두 가지를 다 섞으면 회색이니까 그레이맨은 흰 칸과 검은 칸 두 개의 비숍이 합쳐진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고 봤어. 벤델은 흰색 칸, 악마 그레이맨은 검은색 칸.


■나이트 = 파스칼

나이트는 유일하게 다른 말을 뛰어넘어서 움직일 수 있어서 움직임을 예측하기 가장 어려운 말이야. 그리고 퀸의 공격 범위 밖에서 퀸을 노릴 수 있는 퀸의 유일한 카운터 말이래. 그래서 나이트로 킹과 퀸을 동시에 공격하면 당하는 쪽은 퀸을 내어주는 수밖에 없다고 해. 페터의 비밀을 들추고 리나를 찌르는 게 파스칼인 걸 보면 파스칼이 나이트가 맞다고 생각했어.

또 찬그레이맨은 세상 모든 걸 다 조종하는데 유일하게 파스칼은 조종하지 않아. 파스칼이 나오면 한쪽 입꼬리 올리고 내려다 보면서 ㅉㅉㅉ하는 느낌으로 손가락질만 하고 파스칼이 이리저리 날뛰는 걸 그냥 지켜보면서 조금 손을 빌려 줄 뿐이야. 파스칼이 페터의 비밀을 밝힐 때 보름달을 페터 머리 위에 갖다 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파스칼은 굳이 그레이맨이 조종하지 않아도 스스로 불구덩이로 뛰어들거란 걸 알고 있는 것 같아. 


■룩 = 페터슨/토마스

룩은 오직 직진!!!만 가능한 말이잖아. 그래서 매우 직설적으로 페터가 자기가 처한 현실을 마주보게 만드는 페터슨이랑 토마스는 룩이 아닐까!!!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거야말로 끼워맞추기 끝판왕이라(..) 더자생...


■폰 = 앙상블

그레이맨이 수족처럼 부리는 그림자와 비광(?)들은 오랜 세월 그레이맨이 수집해 온 그림자이자 폰들로 볼 수밖에 없...어서 이것도 더자생. 비광옷 디자인 처음엔 좀 왜... 싶었는데 자꾸 셀프 납득시키려다 보니 식충식물 중에 네펜데스... 닮은 거 같아... 흐린 눈...



이제 이 모든 걸 종합해서 장면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


■시작 장면의 '천지창조' 모티브 은색 손

이건 창작진 인터뷰에서 은색 손 = 그레이맨의 손이라고 한 거 인식하고 봤어. 극장에 들어서면 MR 배경음악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모티브 은색 손이 기다리고 있는데, 원작대로라면 왼손이 인간의 손, 오른손이 신의 손이야. 그런데 시작하면서 오른손이 뒤로 쭉 빠지고 왼손이 오른손을 잡으려는듯이 다가갔다가 체념한듯 스윽 사라지는 게 신기했음. 신이 먼저 인간을 포기한다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창작진은 은색 손이 그레이맨의 손이라고만 했지만 극을 다 보고 페터와 그레이맨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나니 극 시작 부분의 왼손과 오른손은 각각 페터 또는 그레이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판사 극 자체가 미로에서 시작해서 미로로 끝나는 수미상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


□오른손-페터, 왼손-그레이맨

페터가 오른손이라면 오른쪽으로 먼저 빠져나가는 손은 페터가 그레이맨을 추방하는 데 성공했다는 걸 의미할거야. 오른손을 잡으려는 왼손은 먹잇감 페터를 붙잡으려는 그레이맨의 손이 되겠고, 왼손이 손끝을 아래로 내려 포기하는 순간은 그레이맨이 계약서를 태워버리고 사라지는 엔딩과 이어져. 반대로 그레이맨이 오른손이었다면 그레이맨이 그림자를 가지고 사라져버리는 모습 같고, 페터는 그 그림자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에는 체념하고 그림자를 포기하는 대가로 그레이맨과 이별할 수 있게 된다는 뜻으로 읽혀. 

그래서 나는 오른손이 페터인 게 좀더 개연성 있다고 봤어. 극 중에서 손은 배경을 끊임없이 조종하는 역할을 하는데 왼손이 주목 받는 시간이 좀 더 길어. 대표적인 예가 보름달 정원을 카펫처럼 죽 밀어서 깔아주는 은색 손은 왼손, 페터가 금화주머니를 버리기 위해 올라서는 절벽도 왼손. 다른 데서도 손이 힐끔힐끔 많이 등장하는데(갓블레슈에서 배경을 끌고 내려오는 손이나 도시 여행에서 저택 정원으로 배경 바뀔 때 테이블보 걷듯이 걷어가는 손 등) 지금 참고자료 없이 다시 기억하려니 가물가물 가물치... 이건 재연때 다시 정확하게 확인해 올게.

또는 체스의 흑백처럼 오른손 왼손을 선악에 대입해 볼 수도 있을 거 같아. 중세부터 오른손은 선, 왼손은 악/유혹을 의미해서 선악과를 따는 손은 왼손으로 그렸대. 성경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고. 그래서 페터가 평범한 인간의 평범한 선을 대표하는 오른손이고 그레이맨이 흔한 악마의 흔한 유혹을 대표하는 왼손이라고도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누벗

그레이맨이 꿈의 검(..)으로 페터를 찔러서 의식을 끊어버리니까 그레이맨이 만든 세계가 같이 잘리면서 우주가 드러나잖아. 약간 인셉션 같다고 생각했음. 꿈의 숙주가 꿈에서 깨면 꿈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그 설정. 여기선 반대로 숙주가 꿈에 빠지면 세계가 무너지는 설정인 것 같고.

이 게임의 왕이 된 페터는 그레이맨이 만든 세계의 숙주가 되는 거고, 그레이맨이 만들어 낸 세상은 초현실적인 공간이지만 완전히 허상은 아닌 것 같아. 리나랑 파스칼처럼 아마도 죽으면 진짜 죽는 거 같아서(..).

그리고 배경 전환이 전부 종잇장같이 얄팍하게 벗겨지고 펼쳐지고 말리고 잘리는 모습이 이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얇은 껍데기 같은지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것도 인상적이야. 종잇장 환상이 샥 잘리면서 세계의 진짜 모습* = 막막한 우주가 드러나는 데서 칼 세이건이 말한 창백한 푸른 점 생각도 좀 났...는데 이건 너무 간 거 인정(..). 여튼 페터를 찌른 건 그레이맨 입장에서도 약간 응급처치(?) 였을 거 같아. 나중에 철 와이어로 야무지게 꼬매온 걸 보면 숙주가 없으면 그레이맨의 세계도 유지될 수 없다는 의미 같아서 흥미로웠음.

*) 막막한 우주조차도 그 틈을 들여다 보는 그레이맨의 손가락으로 역삼각형으로 찢어지는 걸로 봐서는 그 우주조차 그레이맨이 말하는 '이 악마의 손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음. 말 그대로, 이 미로 속에 있는 한은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떠난다고? 지금 이대로?"

극 전체에서 그레이맨이 유일하게 당황해서 고장나는 포인트야. 이게 페터가 마지막에 추방송을 부르는 힌트가 되었을 거 같기도 해. 아예 이 체스판을 벗어나는 것만이 그레이맨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

페터가 "떠날거야."하면 갑자기 벤델이 "떠난다고? 지금 이대로?"하고 눈에 띄게 당황해서 머리를 막 긁으면서 안절부절해. 페터가 혼자서 간다고 하면 "그것도 혼자서?" 하면서 더 당황하지. 페터가 마지막 선물로 금화 상자를 주겠다고 하면 "난 그딴 거 필요 없는데?"하고 지금까지 연기해 온 것도 잊고 악마의 본모습이 슬쩍 나타나. 그리고 진짜 떠나려는 페터 등에다 대고 목에 핏대를 세워서 마지막으로 도발을 해. "지금 그 안에 인간의 영혼이 있긴 한 거야?" 떠나려던 페터가 잠시 망설이더니 총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나가면 혼자서 좋아서 함박웃음 띄우고 어쩔 줄을 몰라. 


■체크메이트!

체스에서 킹은 '절대로 잡히지 않는 말'이래. 체크메이트를 외치면 거기서 게임이 끝나는 거고 진짜 말을 움직여서 킹을 쓰러트리거나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해. 그레이맨의 목표도 페터의 영혼이지 페터의 목숨이 아닌 거 보면 영혼을 넘기는 그 시점이 그레이맨의 승리인 것 같아.

그레이맨이 직접 리나를 퀸으로 만들었지만 리나는 결국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됐어. 끊임없이 페터를 가스라이팅 시켜서 그림자 없는 놈은 살 가치도 없다고 믿게 만들어서 영혼 팔게 만들어야 하는데 페터가 광장에서 떠나고 두 달이나 지나서도 포기하지 않고 페터를 믿어주고 있잖아. 거기다 '그림자'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까지 알게 됐잖아.

그래서 그레이맨은 나이트가 퀸을 없애도록 내버려 둬. 나이트가 퀸을 잡는 순간, 킹을 지키는 마지막 퀸이 사라져. 

"체크."

이제 킹의 턴이야. 나이트가 킹을 노리고 킹은 체크를 피하려면 어디로 움직일지 선택을 해야 해. 킹은 나이트를 잡아버리는 선택을 하지. 

탕.

총성과 동시에 흰색 칸에 서 있던 킹은 나이트가 피로 물들인 검은 칸으로 옮겨 가. 킹이 검은색 칸에 서는 순간 검은색 칸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악마 그레이맨이 승리의 미소를 지어. 드디어 킹이 손 안에 들어 왔어.

"체크메이트."

그리고 이제 마지막 말이자 이 게임의 주인, 인간들의 하인, 왕의 신하, 검은 칸의 비숍인 그레이맨이 킹의 항복, 영혼을 받아 내러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상으로 내려가지.


■ 은색 옷을 입은 페터의 그림자

아랜디가 올려준 창작진 인터뷰도 읽었고 하이라이트 영상도 봄. 하이라이트 영상 보면 러시아 여행 때 이미 페터 그림자는 은색 옷을 입고 있는데 본공에서는 제한적인 몇몇 장면에서만 입고 있어. 그누벗이나 갓블레쓔립, 엔딩 정도에서만. 중간에 어떤 의도로 연출이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본공만으로 추측해보면 아마 페터 그림자가 덧입는 은색 옷은 그레이맨이 그림자를 직접 조종할 때 씌우는 족쇄같은 무언가인 것 같다고 생각.


■추방송

그레이맨이 절벽으로 데리고 온 페터의 그림자는 다시 검은색 옷을 입고 정말 슬프게 울고 있어. 그림자는 페터를 향해서 계속 손을 뻗지만 페터는 그림자를 안타깝게 쳐다만 볼 뿐 그 손을 마주잡으려고 하지는 않아. 페터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아. 죽은 리나가 살아돌아올 수 없듯이, 이 그림자 또한 절대 '원래대로' 돌아올 순 없어. 페터의 그림자는 페터의 양심이었는데 이제 페터는 살인자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페터는 그림자를 포기하는 대가로 악마를 추방하고 영혼만은 지키는 선택을 해. 페터는 금화주머니를 던져버리고 그레이맨은 계약서를 태워버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돼. 찬그레이멘은 금화주머니를 던져버리는 페터를 향해서 좋아요b 따봉 해주는데 '정답이야.' 같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한 건 니가 처음이야' 같기도 하고. 


■ 숲 속 리나의 영혼

리나는 다시 흰 드레스를 입어. 하지만 더이상 그레이맨의 폰이 아니야. 리나도 페터만큼 홀가분하게 혼자 숲 미로를 거닐지. 하지만 미로 속에서 죽었기 때문에 미로를 빠져나가진 못하고 다시 미로 속으로 사라져. 하지만 적어도 페터를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그레이맨에게서 자유로워졌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가...는 진짜 꿈보다 해몽...


■ 날 부르네 rep.

숲 미로가 천천히 내려와서 다시 페터를 가두고, 페터가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됐던 이야기는 이제 페터가 미로 속에서 나오면서 결말을 맞이해. 날 부르네 립에 맞춰서 미로가 한꺼번에 사라져. 가운데 LED 나무들이 거꾸로 서 있기 때문에 1층에서 봐도 미로가 위로 사라지는 것 같고 2층에서 봐도 미로가 그대로 무대 밑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라 페터가 그레이맨의 미로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강해. 

킹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객석으로 내려오면서 체스판을 완전히 빠져 나가. 그림자가 없더라도 추방당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이 있을 거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이 때 배경을 보면 왼쪽 LED는 흰색 꽃병, 오른쪽 LED는 검은색 꽃병 이렇게 백/흑으로 나눠져 있는데 페터는 흰색 쪽으로 나왔으니(..) 어떻게든 됐을 거야...(?)


■엔딩

미로의 숙주를 잃은 그레이맨은 다시 직접적으론 무대 위로 등장하지 않아. 대신 그레이맨의 새로운 폰이 된 은색 옷을 입은 페터의 그림자가 가운데에 서 있지. 그림자 폰들은 그대로 무대 위에 남아 있다가 페터가 객석으로 내려가면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객석 쪽을 바라 봐. 꼭 다음번 '왕'을 찾는 것처럼.

그리고 커튼콜 후 이어지는 엑시트 음악이 노강요송이라서 난 절대로 강요하지 않아... 하고 음악이 끝나면 "당신 그림자, 저에게 파시겠습니까?" 라는 그레이맨의 소리 없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아 지기까지 nn번을 회전했다!!! 막공까지!!!



한 뮤덕이 있어... 별다를 것 없이 남들처럼 자첫했던...

그 뮤덕은 말야... 지난 겨울 그판사 자첫 중에

그 뮤덕은 말야... 몰아치는 불호 속 넘버에 꽂혀!!

잔고를 다 팔아버렸지 일원 십원 백원 천원 만까지...

남김없이 팔아버렸어 연말관극 설연휴 막공주 끝까지 다!!

잔고를 판 도른자!!!

잔고를 판 도른자!!!


아랜디 초연 오슷 딥디 내줘!!!!!!!!!!